초췌한 안중근 사진은 과연 일제가 그를 비하하려 연출했나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의사 안중근이 독립지사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일반에 각인된 데는 사진 매체의 위력이 컸다. 1909년 10월 거사를 치른 뒤 한달도 안 돼 그 용모를 담은 사진이 신문과 엽서로 대량 유포됐고, 대중이 이를 열광적으로 사들이는 전례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삽시간에 한국과 일본 전역에 그의 얼굴이 알려졌다. 최근 역사학자인 도진순 창원대 교수가 관련 논의에 불을 지폈다. 지난 연말 역사학회 기관지 <역사학보> 248호에 ‘안중근 사진엽서와 국제연대: 비하와 찬양, 그리고 전용·전유’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다. 도 교수가 겨냥한 건 지상파의 안중근 관련 다큐멘터리들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일제강점기 대량 보급된 사진엽서가 안 의사를 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산됐다는 비판을 해왔다. 2014년 8·15 특집 다큐 <안중근 105년, 끝나지 않은 전쟁>(문화방송)은 일제가 배포한 사진엽서 2장에 안 의사가 쇠사슬로 묶여 꿇어앉은 초췌한 모습으로 연출됐다고 주장했다. 일본 무정부주의자 고토쿠 슈스이(1871~1911)가 엽서에 안중근 찬양 한시를 추가한 새 판본을 제작하면서 기존 엽서의 비하 시도를 좌절시켰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도 교수는 이를 국수적 민족주의의 과장·왜곡이라고 반박한다. 사진 원본은 안 의사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수사 자료 성격인데, 일반에 유포되면서 기념물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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